[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정치인이 자신들의 불순한 의도를 감추기 위해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는 상대의 의도를 문제삼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이해충돌의 대표적 사례로 볼만한 박덕흠 의원을 감싸는 국민의당 일부의 기류도 그런 논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박덕흠 국민의당 의원은 21일 자신에 대한 문제제기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내놨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제대로 된 해명이 아닌 얘기가 많다. 박덕흠 의원의 해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는데 첫째로 공개입찰을 통해 공사를 수주한 것뿐이므로 불법은 없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며, 둘째로 자신의 사례를 이해충돌로 본다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라는 거고, 셋째로 그럼에도 여당이 자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의혹 등을 덮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과 가족이 지분을 소유한 건설회사가 관급공사를 수주하는 위치인데도 국회 국토교통위에서 일해온 것 자체가 이해충돌에 해당한다는 것에는 보수언론도 동의한다. 조선일보는 22일치 사설에서 “아들과 친형이 건설사를 운영하고 있고, 백지신탁을 했다지만 본인도 건설사 대주주인 의원이 건설을 담당하는 국토위에 들어가고 간사로 활동한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 박 의원을 계속 국토위에 배정한 야당의 책임도 있다”고 했다. 그동안의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실제 박덕흠 의원은 국토교통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건설업계를 대변하는 주장을 계속해왔다. 누가 봐도 이해충돌이 분명한 사례를 놓고 언론에 “내가 이해충돌이라면 대통령 아들 딸은 아무 데도 취업하면 안 된다”고 주장할 일이 아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당시 피감기관들로부터 공사를 특혜 수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사안인데도 국민의힘이 박덕흠 의원 처리 방안을 놓고 의견을 모으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보도에 의하면 초선 의원들은 여당이 김홍걸 의원 사례를 처리한 것에 준하는 정도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중진들은 진상파악이 먼저라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태도에는 앞서 박덕흠 의원이 언급한 것과 같은 내용의, 여당의 문제제기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인식이 근거가 되고 있다.

박덕흠 의원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 김홍걸 의원을 제명하면서 본격적으로 현안이 됐다. 여당이 도덕성 경쟁 구도를 만든 것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추미애 장관 아들 의혹으로부터 초점을 옮기는 효과를 일부 거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총선 당시 재산신고와 국회의원 당선 이후 재산공개 내용이 다른 것에 대한 의혹제기가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상황은 국민의힘 내에 변화를 요구하는 초선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중진들의 힘겨루기 구도가 반복되는 것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최근 공정거래법, 상법, 금융그룹감독법 등의 처리를 주장하고 있으나 당내 반발에 부딪친 상황이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종인 위원장은 21일 비대위 비공개회의에서 반대에 앞장선 당내 중진들을 향해 15분간 쓴소리를 했다고 한다. 중진들의 반발은 당명 및 로고 상징색 변경과 같은 소소한 문제에서부터 정강정책 개정안 처리, 재보선 후보 선출, 대권주자 관리 전략과 같은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덕흠 의원 문제도 같은 시각으로 볼 수 있다. 결국은 기업을 상대로 한 유착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와 같은 유착의 고리가 됐을 가능성이 초선들과 중진들의 이해관계가 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의 어떤 의도가 작용한 것이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명확한 재발방지 조치를 취하는 게 국민의 신뢰를 먹고 사는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다. 정의당 등이 주장하는 대로 문제가 된 의원들에 대한 ‘꼬리자르기’ 수준의 조치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의원직 사퇴를 강제하면서 이해충돌방지법 등의 제도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까지 나서야 한다.

그런데 기성정치가 뻔히 나와있는 대안도 제대로 소화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탓도 있지만 결국은 ‘우리 편’의 유불리만 따지는 정치가 바뀌지 않는 기득권 수호의 마지막 관문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상대의 약점을 지적하고 책임을 촉구하는 것은 ‘우리 편’에 유리한 일이니 열심이지만, 양쪽 모두에 손해가 될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은 적극적으로 외면하는 거다. 거대양당이 서로의 흠에 대해서 늘 목소리를 높이지만 세상이 그만큼 변화하지는 못하는 배경에는 이런 이유가 있지 않나 한다.

앞서 박덕흠 의원 문제도 그렇지만 세상만사 상대의 의도에 대해서만 말하는 게 ‘우리 편’ 정치로 이어지는 중요한 징검다리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논란이 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지역화폐 관련 주장도 마찬가지였다. 문제가 된 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는 완벽한 연구결과를 담고 있지는 못하지만 상식적으로 나올 수 있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개별쟁점에 반론을 내놓기보다는 조세재정연구원의 ‘의도’를 문제삼고 그들을 ‘적폐’로 규정하고 있다. 이걸로 자신이 정치적 브랜드로 내세울 수 있는 정책의 정당성을 우회적으로 강변하면서 ‘같은 편’을 재확인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해결하려면 이런 식의 자기 편 동원 정치가 아니라 이상과 합리에 기초하는 공론장에서 문제 해결을 만드는 정치가 구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도가 아니라 대의명분이 정치적 문법의 근간이 돼야 한다. 그러나 정치는 물론 언론과 심지어 소셜미디어 공간까지 온통 의도 추정만이 넘치는 세상이다.

이런 사례는 끝도 없이 들 수 있다. 가령 문재인 대통령이 검경과 국정원 개혁 등에 대한 회의를 열면서 추미애 장관과 함께 입장한 걸 두고 ‘힘 실어주기’라는 보도도 그렇다. 대통령은 과거 박상기 장관 때도 같은 회의에 법무부 장관과 나란히 입장했다. 추미애 장관의 검색 카테고리 순서가 바뀌었다는, 구체적인 효과도 불분명한 문제를 놓고 특정 포털의 의도를 논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 대안을 말하고자 한다면 이런 것에서 벗어나는 태도를 가지는 게 먼저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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