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Watch] 예술교육에 꽂힌 '강남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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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형 수재보단 창의인재" '똑똑한 엄마' 시대를 읽다

국영수 집중과외·해외연수는 옛말… 음악·미술 등 통해 사고능력 키워

예술의전당·리움 어린이프로그램 수강신청 하루만에 마감 인기몰이

소셜커머스에 '짝퉁강좌' 나돌기도

#"강좌 접수는 시작되는 그날 바로 마감이에요. 꾸물거리다 몇 시간 지나면 대기자로도 이름 못 올려요. 몇 분 만에 마감되는 프로그램도 있을 정도로 '강남 엄마'들이 아주 난리에요."

초등학교 1학년과 다섯 살짜리 두 아들의 엄마 이수정(37·서울 반포동)씨는 아침부터 컴퓨터 앞에서 떠날 줄 모르고 있다. 이른바 미치도록 클릭한다는 '광클'에 빠져든 모습이 흡사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 티켓을 예매하려는 소녀팬 혹은 게임에 열중한 소년처럼 열심이다. 대학생 때 인기 강좌 수강신청에 초를 다투며 매달려본 후 이런 일은 처음이다. 그는 지금 여름방학을 앞둔 아이들이 수강할 예술의전당 '어린이 여름예술학교'에 인터넷 접수 중이다. 오전11시부터 선착순 등록마감이라 마음이 급하다. 한 반에 25명씩 16개 강좌가 개설돼 있는데 한 반에 책임강사와 전문교사가 4명씩 배정돼 있어 수업료 20만원이 아깝지 않다는 호평이 자자하다. 공모를 통해 강사진을 선정하는데 하버드대 졸업생도 수업을 진행한다고 해 더 궁금해졌다. 다행히 접수에 '성공'했고 이씨의 아이들은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하루 2시간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자녀교육에 대한 열성이 각별한 소위 '강남 엄마'를 중심으로 예술교육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여름방학이라고 놀기만 했다간 큰일이다. 방학을 틈타 국어·영어·수학 과목의 집중 과외나 해외 영어 연수 등에 몰두하던 것도 옛말이다. 부모들의 관심사가 음악·미술 등의 예술 분야로 확장되는 추세다. 이 같은 예술교육의 목적은 화가나 연주자 등 예술가를 육성하려는 게 아니다. 예술을 기반으로 창의력과 통합적 사고능력,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고자 하는 것이다.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이 입시경쟁에 탁월한 암기형 수재가 아니라 사고력과 창조력을 겸비한 '창의 인재'로 바뀐 것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앞서 본 예술의전당 어린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미술교육만 하는 게 아니라 통합형 예술교육이다. 예를 들어 5~6세 과정의 '백년 후 나의 모습, 생각여행' 강좌는 창의력과 디자인을 배우고 초등 1~2학년의 '천재에게 배우는 헬로우 아트' 강좌는 클래식 음악과 명화감상을 기반으로 사고력과 창작력 교육이 더해진다. 미술과 음악에 퍼포먼스까지 곁들인 '크리에이티브 리더십'과 문화와 역사를 동시에 익히는 '꿈꾸는 세계여행', 건축을 중심으로 창의력을 키우는 '공간이야기' 등은 특히 인기다. 강사진도 미술과 음악 전문가뿐 아니라 건축가, 생물학자 등 과학자, 인문학자, 타이포그라피 아티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발됐다.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한 최진숙 예술의전당 아카데미 담당 과장은 "대학뿐 아니라 사회에서 원하는 인재가 예술과 창의성을 원한다는 것을 '똑똑한 엄마'들이 먼저 파악한 것"이라며 "예술적 기질이 있는 아이들이 학습능력도 더 좋다는 미국의 연구결과가 말해주듯 예술교육은 궁극적으로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기에 어려서부터 시작할수록 유리하다"고 말했다. 고학년이 될수록 학생들의 입시 압박이 커지므로 예술교육은 초등학교 저학년의 지원이 가장 많다. 그러나 최 과장은 "예술교육은 왕따·학교폭력 등 사회적 문제 해결도 가능하게 하는 해결책이자 치유방법의 하나"임을 강조하며 "예술의 형태로 접근하면 점수 따기 식 교육에 대한 부담도 적어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뿐 아니라 만족도도 높다"고 덧붙였다. 예술의전당 청소년 프로그램인 '미디어 아트 파티'의 경우 스마트폰을 창작 도구로 활용한 '생산적 놀이' 콘셉트의 교육과정으로 마련됐다.

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열풍을 처음 불러일으킨 것은 삼성미술관 리움이 운영 중인 '리움 키즈'가 효시다. 리움 홈페이지에서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는데 거의 접수 개시 당일 마감된다. 올해는 리움 개관 10주년 전시 때문에 강좌 시작 일정이 조금 늦춰지다 보니 문의가 더 많아졌다. 초등 1~2학년, 3~4학년 반이 각 2개씩 16명 정원으로 운영되며 수강료는 30만원이다. 올해는 개관 10주년 '교감'전과 연계해 한국 전통 도자기와 고서화부터 올라푸르 엘리아손, 게르하르트 리히터, 히로시 스기모토, 서도호, 최우람 등 국내외 거장들의 신작을 감상할 수 있는 수업으로 8월5일부터 15일까지 운영된다. 특히 미술작품을 과학적 시각으로 분석한 설명을 들으며 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방식으로 수업이 구성됐다. 이번 여름방학 지원접수는 11일부터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운영 중인 '청소년 도슨트(전시해설사) 체험 프로그램'의 경우 입시를 목전에 둔 고등학교 1~2학년이 대상인데도 지원경쟁이 치열하다. 20명을 뽑는데 100명 이상 지원할 만큼 경쟁률이 높고 추가 문의가 많아 중학생 과정을 신설했다. 상·하반기로 나눠 3월과 9월에 지원자를 모집해 2개월간 도슨트 이론과 실무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이 기말고사를 끝낸 후 해설 시연 평가를 거쳐 방학부터 실제 미술관에서 도슨트로 투입된다. 토요일 오전10시부터 3~4시간씩 6주간 교육이 진행되고 과천 소재 미술관의 접근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의 직업체험이 가능하고 문서작성과 스피치 강습을 두루 경험할 수 있는데다 교육확인증까지 발급돼 학부모들의 관심이 뜨겁다. 강지영 국립현대미술관 교육문화과 교육담당자는 "실제 해설은 30분 남짓하고 4~6회 참여하는 것이지만 청소년들이 또래 청소년들에게 전시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학교나 학원 교육으로는 접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번 여름방학에 신설돼 오는 26일부터 8월16일까지 운영될 '청소년 비평 워크숍'은 비판적 사고능력과 논리적 글쓰기를 미술을 매개로 배울 수 있어 논술 수업의 대안적 형태로 관심을 끌고 있다.

삼청로 금호미술관은 '키즈 팝콘'이 인기강좌다. 대상은 7세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15~20명 정원이다. 미술관이 축적해둔 작가군과 인프라를 활용한다는 게 장점인데 금호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와 금호영아티스트 출신 작가들이 강좌에 참여한다는 게 특징이다. 김윤옥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는 "미술관 교육을 포함해 특히 방학 등 장기 워크숍 프로그램이 강화·증가하는 것은 선진국의 추세"라며 "예술과 친숙해질 뿐 아니라 학교와 학원이 수행하지 못하는 대안적 교육 형태가 될 수 있어 부모들의 관심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열정을 악용하는 상술도 등장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시중 소셜커머스 업체에서 3만~4만원에 판매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상은 미술관과 무관하며 사설단체가 신청자들과 함께 미술관 교육과정에 '곁다리'로 끼어드는 것. 미술관 교육에 대해 늘어난 수요를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까닭이나 공공기관 교육프로그램의 신뢰도를 상술로 팔아먹는 경우라 교육의 질을 보장 받기 힘들다.

또한 국공립 예술기관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잘만 찾아보면 무료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강좌가 많다. 세종문화회관의 '오케스트라 월드'는 금관악기·현악기 등 오케스트라의 파트별 감상과 연주 체험을 할 수 있는 무료 강좌이고 해시계부터 12간지와 24절기 등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역사와 과학원리를 배울 수 있는 '세종이야기'는 참가비가 3,000원이다. 국립극장은 국악축제인 '여우락 페스티벌'과 연계해 국악기 제작부터 연주, 감상체험을 할 수 있는 '음악놀이터-공명유희'를 참가비 5,000원에 운영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유물로 배우는 역사 강좌 역시 유익하다.

이 같은 예술교육 열풍에 대해 김은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교육정보서비스팀장은 "서울관 개관과 함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 지 3개월 됐는데 벌써 입소문과 호응도가 좋아 수강신청은 이틀을 넘기기 어렵고 추첨제를 도입해 참가기회를 넓히는 등 많은 분들께 다양한 혜택을 드릴 수 있게 노력 중"이라며 "학원 등 사교육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면서도 저렴하고 유익한 강좌로 공교육적 보완재 효과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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